No 1. Wh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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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6.


No 1. Who are you?

USJ에 빌런이 습격한 사건은 어느새 학생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A반 교실은 2주 후에 열릴 체육대회 소식에 들썩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볕이 따사롭게 쏟아져 들어왔고, 학생들은 저마다 어떤 종목에 나갈지 떠들어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교실 안은 웃음소리와 흥분된 대화로 가득 차 있었고,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들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학교다운 이벤트를 앞둔 들뜬 분위기 속에서, 아이자와 선생이 평소보다 더 지쳐 보이는 얼굴로 정숙을 요구하며 교실 문을 열었다. 그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에 학생들의 소란이 잠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인물의 모습에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미도리야는 멍하니 그 학생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트’라는 감정이 사람의 형상을 취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분홍색으로 물든 그 학생은, 아시도의 산뜻한 분홍과는 또 다른——그래, 이렇게 표현하는 게 실례일지는 모르겠다만——신선한 연어와 참치 사이 어딘가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로 가득했다. 길게 땋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등 뒤로 부드럽게 늘어져 있었고, 동그란 눈은 불안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뺨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고, 손가락은 긴장된 듯 교복 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있었다.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학생이 작은 발걸음으로 교단 위에 섰다. 그녀의 발소리는 교실의 고요함 속에서 유독 가볍고 조심스럽게 들렸다.

“주목해라.”

아이자와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누구예요?! 전학생?”

“그래. 정확히 말하면 편입생이지.”

편입생이라는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교실은 경악으로 가득 찬 목소리들로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교과서들이 흔들릴 정도로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유에이에서 편입생을 받는다는 소문은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우수한 추천입학생조차 엄격한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다는 것이 이 학교의 철칙이었다. 편입학 시험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년 유에이 입시요강을 꼼꼼히 살펴왔던 미도리야조차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였다. 학생들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여자 편입생이라니… 이거 최고잖아.”

미네타의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질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이미 반짝이고 있었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탐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미네타, 적당히.”

아이자와는 한숨을 쉬며 교실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학생들 하나하나를 스치며 지나가자, 소란이 조금 더 가라앉았다.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유에이 편입학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건 아니다. 추천입학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그 조건들을 충족하면 입학할 수 있지. 내가 교사로 부임한 이래로는 처음이지만,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한 명 있었다.”

“외람되지만…! 혹시 그 조건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질문의 스타트를 끊은 건 반장이었다. 이이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의 자세는 언제나처럼 곧고, 목소리는 진지했다.

“편입학 경로는 두 가지다.”

아이자와의 목소리가 교실 구석구석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교실 안 공기가 무거워지며, 모두의 시선이 아이자와에게 집중되었다.

“첫 번째는 유에이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프로 히어로의 직계가족이면서, 그 개성의 일부가 유전되었고——”
“혈연! 치사해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중에서도 유에이 3학년 과정 범위의 편입고사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입학 전형 가혹해!!!!”

3학년 과목에서 90점이라는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유에이 3학년 과정은 전국 최고 수준의 히어로 교육과정이었고, 실전 경험에 기반한 이론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난이도 높은 시험이었다. 그 시험에서 90점을 받는다는 것은 웬만한 현역 3학년생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경외감이 스쳤다.

교실 안은 순간 숙연해졌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두 번째는…”

아이자와가 잠시 멈칫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무거움이 깔려 있었다.

“민간인이 빌런을 퇴치해 프로 히어로에 준하는 공적을 세운 경우다.”
“그, 그렇다면 둘 중에…”
“아, 소개가 늦었군. 로망, 소개해라.”

아이자와의 손이 칠판을 가리켰고, 분필로 또박또박 이름이 적혔다. ‘미야비카 로망’.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유독 크게 들렸다. 미야비카? 히어로 사회에서 그 성을 쓰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어딘가 익숙한 그 동그란 눈과 부드러운 분위기는…

“미, 미야비카 로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떨리고 있었다. 긴장한 듯 손을 꼭 쥔 채,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분홍색 뺨이 더욱 붉게 물들었고, 땋은 머리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세게 쥐어져 있었고,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클렌징 크림 엔터테이너 미야비카!!!”

아시도가 책상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교실은 추측과 감탄으로 뒤덮였다. 연예인 미야비카 디케의 딸이라면, 그렇다면 아버지는 설마…

“난투 히어로 아레스의…?”
“No.11 아레스!!!”
“자, 로망은 자리에 앉고. 바로 1교시 준비해라.”

아이자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로망 주위로 몰려들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책상이 부딪히는 소리, 흥분된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편입학 전형 중 어떤 것으로 들어왔는지, 머리색은 어머니 유전인지, 미야비카의 팬인데 사인 받을 수 있는지——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 틈새로 난처한 표정의 로망이 보였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제대로 된 대답 하나 못하고 쩔쩔매다가, 이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땋은 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며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고, 손은 여전히 불안하게 움직였다.

“쳇, 얼마나 대단한 걸 기부했길래 편입학을…”

바쿠고가 자리에 앉은 채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짜증이 묻어났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져 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어이 바쿠고, 아직 어떤 전형인지 말 안 했잖아?”
“이 등신아!!! 딱 보면 모르겠냐?”

바쿠고는 로망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 잘난 개성을 실컷 구경해보겠다고. 하지만 저 태도를 보아하니 프로 히어로에 준하는 공적을 세웠을 리 없었다. 그는 로망이 부모의 그림자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다고 단정 지었다. 노력과 근성, 열망과 동경만을 무기로 자존심을 지키며 유에이에 입학한 바쿠고에게, 저기 서 있는 저 분홍색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가볍게 두드려지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에게 히어로란 올마이트 같은 존재였다. 히어로는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 특히 저런 태도라면 더더욱. 하지만 바쿠고는 편입학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는 점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시험이 쉬웠다면, 돈만 가득한 집안의 멍청한 자식들이 형편없는 개성으로도 유에이의 교문을 줄줄이 통과했을 테니까. 적어도 자신이 입학한 유에이는 히어로가 될 자질을 돈으로 판단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바쿠고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그런 확신이 깃들어 있었고, 동시에 로망에 대한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유에이 학생들은 대부분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일까? 바쿠고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숟가락으로 밥을 푸며 교실 밖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불쾌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A반 교실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교실 문 앞에는 줄이 서 있을 정도였다. 이틀 전 USJ 사건으로 한바탕 주목받은 것도 모자라, 오늘 또다시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속삭임이 들려왔다.

목적은 단 하나, 오늘 온 편입생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렌징 크림 엔터테이너 ‘미야비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히어로가 엔터테이너를 겸하면서 입지가 불안정해진 순수 엔터테이너들 사이에서, 2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킨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딸이니 모두가 주목할 만했다. 아버지는 또 어떤가? No.11 난투 히어로 ‘아레스’. 빌런 퇴치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직 체력과 폭발적인 전투 센스만으로 11위 히어로에 등극해 20명이 넘는 사이드킥을 거느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학생들의 시선은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 그림자가 어지간히 큰가 봐.”
“바쿠고, 넌 못되게 말하는 버릇 좀 고쳐라.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
“등신 머리털, 너는 인기 있는 것처럼 말하네.”
“크윽! 아픈 곳 건드리지 말아 줄래?”
“그럼 로망은 역시 히어로 직계가족이라서 들어온 거겠지?”
“로망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야? 카미나리는 벌써 친해졌어? ”
“하지만 어쩐지 미야비카라고 부르면 연예인을 부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뭐, 로망도 그쪽이 좋다고 했어.”

미도리야는 한쪽 구석에서 노트를 펼치며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펜을 빠르게 움직이며 뭔가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의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고, 입술은 가볍게 움직이며 생각을 흘려보냈다.

“히어로 3년 과정 편입고사 90점 이상… 과연 로망 씨는 몇 점일까? 설마 만점일까? 아니면 90점과 만점 사이 어딘가? 배치고사는 어떤 과목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히어로 기초학이 포함되는 건지… 아니면 일반적인 고등학교 과정의 압축판? 어쨌든 시험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데… 시험 때 스터디를 만들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또 나왔다, 데쿠 군 중얼중얼.”
“유에이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공적을 세워야 직계가족의 입학을 고려해줄 정도일까? 막 USJ 정도 급 건물을 지어준 거 아니야?!”

그 대화를 듣던 3학년 선배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유에이 체육복을 입은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하지만 친근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A반에 편입 온 얘 이야기지?”
“어…! 혹시 누군지 아세요?”

1학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내가 1학년 때 아레스의 장남, 차남이 3학년이어서 얼핏 알고 있는데.”
“네!”
“3학년이 사용하고 있는 훈련 건물은 미야비카 디케가 지어준 거야.”
“본 투비 부르주아!!!!!”
“아레스는 한창 잘나가던 시기에 유에이 고교에서 3년간 교사로 활동했어. 아마 아이자와 선생님도 1년 가르쳤을걸?”
“1대1 가정교사!!!!!”
“장남, 차남은 그 해 최우수 졸업생이었지.”
“엘리트 코스!!!!!”

1학년들이 감탄하는 것과 달리, 주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일반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오갔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특례입학’이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왔다. ‘완전 공주님이잖아.’ 그런 속삭임들이 복도 곳곳에서 퍼져나갔다. 로망은 급식 쟁반을 꼭 쥔 채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쟁반 가장자리가 하얗게 질렸다. 고개를 숙이자 땋은 머리 끝이 바닥을 향해 축 늘어졌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후회와 불안이 그녀를 짓눌렀다. 아버지가 “멍청하게 개성을 사용할 바에는 유에이에 입학이라고 해.”라고 했을 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 사회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받은 관심이었기에, 로망은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에이의 편입시험은 필기로만 진행되었지만, 일반적인 고교 시험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매일 밤늦게까지 히어로 영상과 기초학, 실전 구조 이론 등을 반복하며 3년치 압축 과정을 1년 만에 준비했다. 손가락에는 펜을 쥐느라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눈 밑에는 피곤함이 그늘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쾅―!! 

식판이 통째로 산산조각 나는 폭음과 함께 바쿠고 카츠키가 나타났다. 폭발로 부서진 식판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졌고, 손바닥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위기였다. 주변 학생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섞여 있었다.

“중얼중얼… 다 시끄럽다고, 이 등신들아.”

바쿠고의 목소리가 낮고 날카롭게 깔렸다. 

“부모 덕에 들어왔다고? 그딴 걸로 떠들 거면 진작 글러먹었어!! 히어로가 그렇게 만만하면 편입해라, 어?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바쿠고의 목소리가 식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식당 안의 대화 소리들이 순식간에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가 노려보는 곳은 로망이 아니라, 로망을 둘러싸고 수군대던 다른 반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시선은 로망 너머가 아니라 로망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특히 너, 아까부터 ‘공주님’이니 ‘부럽다’니 지껄이던 게 누군지 뻔히 보이는데, 네가 가진 그 잡개성으로 빌런 하나라도 잡아봤냐? 아니면 그 부족한 머리로 전국 1등을 찍어봤냐?”

바쿠고가 로망 쪽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인정 섞인 톤이 스쳤다.

“…적어도 저 녀석은 편입시험 90점은 찍었을 거 아냐. 너보단 백배는 낫겠지.”

로망은 그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바쿠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그것이 로망과 바쿠고의 첫 조우였다. 바쿠고는 금세 시선을 피하며 혀를 차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거칠게 움직이는 모습이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키리시마가 눈을 반짝이며 바쿠고 옆으로 다가갔다. 그의 미소는 밝고, 목소리는 장난기 어린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와… 바쿠고, 너 방금 로망 감싸준 거지?”
“나 먼저 간다.”
“아니, 분명히 ‘백배는 낫다’고 했잖아!”
“그건 그 놈들보다는 낫다는 거지.”

바쿠고의 따가운 시선이 다시 느껴졌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에, 로망은 황급히 반찬에 젓가락질을 해댔다. 아, 이게 왜 안 잡히지. 곤약이 젓가락 사이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어이, 핑키.”
“나?”

아시도가 고개를 돌려 바쿠고를 쳐다보았다. 

바쿠고는 고개를 저으며 로망을 향해 턱짓을 했다. 거기, 너. 편입생. 몇시간 전, 제 이름을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야비카라던지, 로망이라던지 이름을 두고 그는 ‘핑키’라는 호칭을 붙였다.  그롷지만 어쩐지 그 호칭이 기분 나쁘지 않아 눈을 돌려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을 마주했다.

“아, 응…!”

척봐도 눈이 크게 흔들리는게 보였다. 다른 A반은 바쿠고가 제 성정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 막 전학 온 여학생을 울리기라도 할까 긴장상태였다.

“편입시험. 몇 점이냐?”

바쿠고의 질문에 식당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생각보다 평범한 질문이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궁금해 할만한 내용이었다. 그 적막이 너무 고요해서 로망은 제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9…”

모두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만점은 아니구나! 역시 완벽한 캐릭터는 아니었어. 식당 안 공기에 실망과 호기심이 섞였다.

“99점…”

로망의 목소리가 작게 떨어졌다. 식당 안이 술렁였다. 99점이라니. 딱 1문제를 틀렸다는 말이었다. 로망은 입술을 깨물었다. 답은 알고 있었다. 2학년 과정, 재해 구조학에서 배우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매년 중간고사에 기출로 나올 만큼 출제가 빈번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로망은 다른 답을 적어 냈다. 1점 감점은 아마 거기서 났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98점이었겠지. 굳이 그런 내용까지 덧붙여가며 왜 틀렸는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로망의 복잡한 표정을 뒤로하고, 바쿠고는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고 거칠었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소리가 식당에 메아리쳤다. 로망은 한참을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 문 쪽을 바라보았다. 분홍색 눈동자가 문을 향한 채 멈춰 있었다. 입 안에서 그 이름을 조용히 곱씹었다.
 

바쿠고.

바쿠고 카츠키.